법학전문대학원 뉴스레터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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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ogang Newsletter of Law School March Issue

Opinion

Opinion

코로나 시대의 법학전문대학원

13기 성소진

성소진 원우(13기)

거창한 제목과는 달리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약소하다. 그러나 뉴스레터 발간호 제작이라는 막중한 일을 맡게 됨과 동시에 공식 학보의 첫 사설(私說)을 장식하게 된 영광은 약소하지 않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지금 현재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우리 모습 그 자체, 유례없는 팬데믹 사태 속 우리 법전원 모습이다.

'비대면'이라는 말은 이제 우리 일상의 부합물이 되었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정돈되지 못한 모습을 하고(나의 경우는 그렇다..) 저마다의 모니터 앞에 앉아 수업을 시작한다. 교실의 소란한 분위기는 잠시 동안 자취를 감췄으며 만나보지 못한 동기들과의 내적 친밀감을 쌓는 사이 수업은 진행된다. 스터디 역시 그렇다. 하루 확진자가 크게 늘어난 시기에는, 모니터를 둘러싸고 문제를 풀었다. 열람실 역시 생각보다 빈 곳이 많다. 주인이 없는 자리가 아니라 주인이 오지 않은 자리다. 어느 곳에선 부분적으로, 어느 곳에선 완전히 대면으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지만, 정확히 2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비대면'은 진행 중이다.

내 생각은, 이러한 '비대면'의 일상이 법학전문대학원에 있어서 양면의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우리 법전원의 모습은 어떠하였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남겼는지 필자의 시선에서 말하고자 한다.

'법학 공부와 비대면'

법학 공부란 무엇일까? 2학년인 지금도 모른다. 그러나 이기택 석좌교수님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선문답처럼 스쳐간 것은 법학 공부에 있어서 '토론'의 중요성이다. 토론.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러 사람이 각각 의견을 말하며 논의함. 그 사전적 의미는 이러한데, 법학 공부에 있어서 토론은 무슨 의미일까. 내 생각은 이러하다. 우선적으로 '방법의 토론'이다. 법학 공부에 있어서 공부방법은 시작과 끝일지도 모른다. 쟁점을 읽어내는 방법, 논리를 전개하는 방법, 결론을 도출하고 사안을 해결하는 방법, 방대한 지식을 한정된 기간에 습득해 정해진 시간에 그 어떤 사족 없이 맞춰진 분량에 간결히 써내는 방법. 효율적인 방법을 모르고서야 '3년 안에 법조인 수급'이라는 '국가적 데드라인'을 맞출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이란 것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문제가 있다. 내가 올바른 방법을 쓰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선 비교 대상 없이 알 길이 없다.

다음으로는 '해석의 토론'도 있다. 우리가 배울 것은 법조문이다. 요건과 효과를 기술한 이 법문장은, 그 자체로도 해석의 여지가 많아 법원이 이에 대해서 1차적인 해석을 마치면,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법원의 법리 역시 2차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논리는 시간, 공간, 관계, 당사자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될 수 있기에 혼자서의 해석은 역부족이다.

마지막으로 생활 역시 중요한데, 누구나 공감하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거대함 앞의 나약한 존재와 같아서 3년이라는 시간은 모든 것이 '공부'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일상, 더 나아가 3년의 인생의 모든 요소를 공부와의 관계 속에서 재구성한다. 내 신체와 인간관계, 경제활동과 소비, 생활패턴까지. 갈릴레이가 로스쿨생이었으면 '그래도 지구는 돈다.'가 아니라 '그래도 열람실 시계는 돌아간다'고 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정답이 없다. 방법에도 정답이 없고 해석과 생활 역시 정답이 없다. 그러니 나 혼자서 깨우치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깨우쳐가는 것이 좋은 것이고 '비대면'이라는 소통의 부재는 누구라도 약간의 걸음을 옮겨 원우와 문제를 토의하는 기회를 보기 좋게 박탈한 것이다.

'네트워크의 부재'

법학전문대학원은 이론적 지식의 전달과 동시에 실무적 역량의 함양을 목적으로 두는 전문대학원이다. 그렇기에 이 공간에서 네트워크는 꽤 중요한 것 같다. 우선적으로 지식을 매개로 이어지는 교수와 학생, 정보와 기반환경을 제공하는 행정실과 학생, 현장의 실무가 동문과 후배 학생 등등이 있다. 모든 것을 학생 중심으로 생각해서 너무나 죄송스럽지만, 학생의 입장에서는 지식과 정보와 실무에 대한 접근성을 갈구한다.

그런데 이 네트워크란 것은 단순히 전화번호 뒷자리까지 알고 이름 몇 자 아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니 연(緣)에 가깝다. 연은 친밀함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고 친밀함은 반복적인 만남을 양분으로 삼는다. 비대면으로 인해 만남이라는 선결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네트워크란 것이 부재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너무 과하게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지만 최근 오미크론 확산의 여파로 상당수의 기관들이 실무수습의 규모를 축소시켰다! 그만큼 줄어든 기회는 누군가에게 큰 의미일 것이다.

'약간의 희망, 학습의 유비쿼티(ubiquity)'

그래도 비대면이 마냥 나쁘게만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사회 전반적으로도 공감되는 양상이지만, 이제 우리는 어디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다. 학습은 교실이라는 독점적 공간을 벗어나 개개인의 공간으로 편재하기 시작했다. 좋게 말하면 토론도 네트워크도 탈공간적으로 형성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이것은 원칙적인 대면에 수반하는 보완재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전문대학원의 위기 대응'

내가 던지고자 하는 가장 중점적인 말은 '코로나는 종식되었는가? 이제 우리는 교실로 돌아갈 때인가?'의 뒷북과도 같은 게 아니라 '코로나 아닌 다른 것이 올 그날'에 대한 것이다. 코로나라는 대규모 감염병 사태는 사회 전체의 활동을 축소시키고 제한했다. 그러나 코로나 아닌 다른 감염병이 창궐할지도 모르는 것이고, 꼭 재해가 매번 감염병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법조인 양성을 포함한 사회적 활동을 위축시킬 사회적 위기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고 각 기관은 이 사태를 계기로 각자의 위기 대응 능력을 평가받게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전문대학원 역시 차후의 사회적 재해에 대비할 위기 대응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대학 전체가 아닌 전문대학원만 콕 집어 그 시스템 마련을 촉구하는 것은 일반 대학과 전문대학원의 존재 의의와 교육의 양상은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법조인 양성을 주목적으로 하는 바, 그러한 과정에 차질이 생겨 법조인력 수급에 문제가 생긴다면, 과장 조금 보태서, 국가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전문대학원은, 커리큘럼의 최소 일시적 위축부터 최대 마비에 이를 수 있는 위험 상황을 회피해야 한다. 첫째, 교육과 학습의 계속성을 담보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교수자의 교육과 학습자의 학습은 끊어져서는 안 된다. 절대적 시간은 물론 교육의 질 역시 이전 그 어느 시점과 비교하여서라도 동질적이어야 할 것이다. 이 관점에서 학교는 구성원과의 긴급연락망 구축은 물론 실질적인 보호와 관리의 의무도 지지 않을까. 둘째, 참여와 접근성의 동등한 보장이다. 코로나는 만인에게 평등하지만, 사회적 재난이 꼭 평등한 것은 아니다. 전체 학생 중 특정 집단에만 영향을 미치는 위험이 존재한다면, 그들 역시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로스쿨의 모든 교육과 인프라에 참여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대비책을 준비해야 한다. 셋째, 공정한 시험과 평가의 방식이다. 중간고사를 앞둔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있다. 확진자는 어떻게 시험을 볼 것인가? 이에 대해선 이미 대비책이 있겠지만 절대 격리공간을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치명률도 전염률도 높은 바이러스라면? 전문대학원의 시험과 평가는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엄격하게 이루어진다는 원칙 아래에서 예외의 범위와 방식을 미리 설정해두지 않으면 공정성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재난상황을 이용하여 자행되는 시험부정행위의 방지'일 것이다.

장황하고 지리멸렬한 말을 너무 많이 했다. 그래도 첫 발간호라 이만큼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구성원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학보는 앞으로도 꾸준히 구성원의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다. 누구라도 좋으니 우리 로스쿨에 대한 이야기라면 마음껏 풀어내는 그런 학보, 뉴스레터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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